뇌과학과 마케팅의 만남
뉴로 마케팅
조급함을 없애주는 느린 음악, 창문과 시계가 없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내부,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만 할 것 같은 커다란 카트까지. 마트는 여유와 즐거움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한 마케터의 상술이 숨어있다.
빤히 아는 상술임에도 어김없이 소비를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무의식’에 있다.
사진 ㅣ www.shutterstock.com
unconscious
지갑을 열게 하는 95%의 법칙
마케팅에는 수많은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경쟁이 그랬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펩시를 선택한 소비자들도 라벨이 붙은 상태에서는 꼭 코카콜라를 집어 들었다. 스타벅스의 인기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를 가장 선호한다고 답한 소비자에게 이유를 묻자 정확히 대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들에게 맛이나 제품은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냥 ‘좋아서’ 좋은 거다. 강렬한 코카콜라의 로고나 스타벅스의 간판을 보면 설레고,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 이는 뇌파 분석을 통한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됐다. 선호하는 브랜드를 보면 동공이 확장되고, 행복감을 주관하는 뇌 부분이 활성화된다. 우리가 ‘충동구매’라 부르는 대부분은 이 같은 무의식이 반응해 초래한 결과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제럴드 잘트먼(Gerald Zaltman)은 무의식적인 소비를 ‘95%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인간 사고의 95%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므로 우리의 소비 또한 무의식적인 반응일 뿐이라는 것. 또 제럴드 잘트먼은 제품력에 상관없이 그 제품이 가지는 이미지나 경험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많은 기업이 구매욕을 자극하는 광고를 만들고, 패키징이나 슬로건 등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는 이유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어김없이 이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brain science
무의식을 분석해 마케팅에 적용하다
뉴로 마케팅(Neuromarketing)은 뇌 신경세포를 뜻하는 뉴런(neuron)과 마케팅의 합성어로, 소비자의 무의식을 분석해 거꾸로 마케팅에 적용하는 기법이다. 제품의 명칭, 디자인, 기능 등의 개발단계부터 로고나 패키지, 광고 등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제품이 탄생하는 데에는 수많은 단계가 존재한다. 이때 설문조사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 대신 소비자의 무의식을 적용하는 것이 뉴로 마케팅이다. 마케팅 조사기관에서는 아직도 불특정다수의 실험자를 선정해 제품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소비자의 생각과 의견을 자세히 수집할 수 있지만, 소비자의 거짓 설문 가능성과 소비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그러나 뉴로 마케팅을 활용하면 ‘거짓 없는 뇌’를 활용해 진실하고 극대화된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방법은 다양하다. 뉴로 마케팅이라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케팅에 뇌 과학이 접목된다. 뇌 영상 분석, 안구운동 추적, 뇌파측정, 자율신경계 반응 분석 등 다양하고 과학적으로 고객의 반응을 측정한다. 무선 헤드셋 모양의 장치를 쓰고 광고를 시청하면, 15초의 짧은 순간에도 수시로 변하는 피실험자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 눈동자를 정밀하게 측정해 무엇에 시선이 더 오래, 많이 머무는 지도 추적할 수 있으며, 뇌로 가는 혈류의 흐름을 측정하여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도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다. 이렇게 얻어진 결과는 마케터에게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때문에 뉴로 마케팅은 제품 출시 전 제품의 디자인을 결정하거나 광고효과의 측정, 광고 기획 등에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ㅣ 혼다 홈페이지(world.honda.com)
marketing
뉴로 마케팅을 활용한 새로운 접근
2008년 국내 마케팅 기업 브레인앤리서치에서는 카스레몬의 광고효과를 시선추적과 뇌파검사를 통해 분석했다. 시청자의 시선이 해당 제품의 로고에 얼마나 집중되느냐를 측정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광고는 실패였다. 광고에 맥주병이 등장했을 때부터 ‘카스’ 로고에 시선이 집중되지 않았고, 예쁜 여배우가 등장하자 소비자의 시선은 대부분 배우의 얼굴에 집중됐다. 여배우가 맥주를 마신 후 병을 내려놓는 장면에서는 소비자가 병을 보는 시선이 거의 0%에 가까웠다고 한다. 모델에 대한 시선 집중도가 너무 높아 홍보 효과는 작았던 광고였다.
일본 기업 혼다는 새로운 오토바이 모델의 디자인 결정에 뉴로 마케팅을 활용했다. 혼다는 뇌의 얼굴인식 실험 결과를 활용해 사람은 얼굴과 비슷한 모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간의 뇌에는 얼굴을 인식하는 신경회로인 ‘얼굴뉴론’이 있기 때문. 이후 화가 난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로운 오토바이의 전면부 디자인으로 결정했고, 그 결과 실제로 차량 운전자들이 이 오토바이를 인지하는 확률이 43%나 높아졌다.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 혼다는 이 제품을 통해 사고 위험을 줄이는 안전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뉴로 마케팅은 광고 기획에도 활용된다. 치토스로 유명한 스낵 회사 ‘프리토레이’는 치토스 광고를 새롭게 제작하기 전, 뇌파측정 방법을 활용했다. 소비자들이 치토스를 먹을 때 뇌의 어느 부분이 강하게 반응하는지를 파악해 광고 콘셉트를 도출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치토스를 먹을 때 겉포장지나 먹는 과정이 아닌, 치토스를 먹은 후 손가락에 남는 오렌지색 치즈 가루에 강렬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외로 사람들은 치즈가루가 손에 묻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의미였다. 프리토레이는 실험 결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오렌지 언더그라운드’라는 광고를 제작했다. 손가락에 묻은 치토스 가루로 결벽증이 있는 직장상사의 이어폰을 더럽히거나 명함에 낙서를 하는 광고였다. 왠지 모를 해방감과 통쾌함을 안겨주는 이 광고는 소비자의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ㅣ 치토스 홈페이지(www.orangeunderground.com)
ethical
뉴로 마케팅의 윤리적 활용
뉴로 마케팅은 일상생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는 시선추적을 통해 일반 사용자들이 검색결과를 볼 때 최상단에 노출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확인한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거의 모든 포털 사이트의 최상단에 커다란 광고가 자리 잡은 이유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리미엄 아울렛인 여주아울렛은 나이키, 아디다스처럼 명품에 비해 저렴하고 대중적인 브랜드를 아울렛의 양 끝에 배치했다. 가까운 백화점이 아닌 먼 아울렛으로 몇 시간씩 운전해 쇼핑을 감행한 소비자들은 무언가를 꼭 사야만 한다는 절박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비싼 가격의 명품을 구입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매장부터 둘러보려는 심리가 있다. 이를 이용해 양 끝에 있는 두 매장만 찾더라도 아울렛을 다 둘러보는 동선을 만든 것이다.
할인 마트의 경우도 소비자는 대부분 매장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통해 이 동선 안으로 핵심 전략 상품을 진열하곤 한다. 이렇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우리의 생활 곳곳에는 소비자의 심리와 무의식을 분석한 뉴로 마케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뇌의 구매 버튼을 직접 누르게 하는 마케팅이라 일컫는 뉴로 마케팅. 기업의 입장에서는 좀 더 쉽게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무의식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왠지 비윤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실험자의 밝히고 싶지 않은, 극히 개인적인 선호가 밝혀질 수 있고 소비자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윤리성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다. 또한 특정 상품에 대해 어떤 영역이 활발히 반응하는 지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사고의 내용까지는 알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이밖에도 앞으로 뉴로 마케팅이 성공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많다.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마케팅 수단으로서 뉴로 마케팅의 영향력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업은 육체적 본능을 건드리는 꼼수가 아닌 소비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력과 함께 윤리적으로 뉴로 마케팅을 활용할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