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특허 전략으로
세계 최초를 만들다
기업을 키우는 IP
크루셜텍
생체인식 솔루션을 개발하는 크루셜텍은 IT 스타트업계에서 신화 같은 존재다.
초소형 모바일 광마우스 OTP, 모바일 지문인식 모듈 BTP 등 세상에 없던 모바일 핵심기술을
차례로 내놓으며 세계 모바일 시장에 굵직한 획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혁신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크루셜텍 지식전략팀 김재흥 이사를 만나 그 답을 구했다.
OTP
예측하고 과감히 실행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IT 붐이 일던 2001년, 크루셜텍의 안건준 대표는 광통신모듈로 창업했다. 창업 초기 1,400억 원의 수주액을 올렸다. 하지만 IT 버블이 꺼지면서 스타트업계 전체가 흔들렸고, 1년 만에 크루셜텍의 수주액은 0원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크루셜텍의 본격적인 혁신의 행보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전문분야였던 광통신사업을 과감히 접고 ‘초소형 모바일 광마우스 OTP(Optical TrackPad, 이하 OTP)’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OTP는 스마트폰 화면의 커서를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술. 이는 광마우스 원천기술을 갖고 있던 미국의 HP가 개발하려다 실패한 기술이기도 하다. 크루셜텍은 2006년 삼성전자에 OTP를 첫 납품하고, 2008년 미국 모바일 시장 점유율 1위였던 블랙베리에 OTP를 독점 공급한다. 당시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제조사이자 블랙베리를 제조하던 RIM은 블랙베리의 입력장치를 OTP로 전량 교체했다. 이후 HTC, 샤프 등의 고객사를 추가 확보해 3,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온다. OTP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블랙베리가 아이폰의 등장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몰락하게 된 것. 크루셜텍의 OTP 역시 터치스크린에 밀리기 시작했다. 2011년 당시의 상황을 김재흥 이사는 이렇게 전한다.
“당시 크루셜텍은 이미 OTP 이후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어요. 2012년에 OTP에 지문인식 기능을 추가한 ‘초소형 모바일 지문인식 모듈 BTP(Biometric TrackPad, 이하 BTP)’을 개발 완료했고요. 다만 우리의 예상보다 모바일 시장의 변화가 더 급격했던 거죠. 아이폰의 시장 점유율 속도가 굉장히 빨랐습니다. 당시만 해도 모바일 지문인식이 생소한 기능이라 1~2년간 경영위기를 겪었고요.”
하지만 크루셜텍은 경영위기 속에서도 BTP에 확신을 갖고 오히려 R&D에 과감히 투자했다. BTP의 기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BTP는 센서와 패키징 등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알고리즘 등 소프트웨어 기술도 매우 중요하다. 지문인식을 하는 표면 소재가 UV, 크리스털세라믹, 글라스 등 다양한데 그에 따라 인식률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크루셜텍은 2014년 말 일본 후지쯔의 디즈니폰으로 BTP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같은 해 펜텍 베가 LTE-A 모델로 국내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다.
- * 초소형 모바일 지문인식 모듈 BTP
- 손가락이 전기가 흐르는 BTP 표면에 닿으면 지문의 굴곡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정전용량값을 나타내는데 반도체 센서로 이를 측정해 이미지화하고, 사람마다 다른 특징점을 추출, 암호화한 뒤 전용 알고리즘으로 개인을 식별하는 솔루션. 출입국 관리소나 기업의 근태 관리 등에 사용되는 광학 방식에 비해 정밀하고 초소형화에 유리하다.
BTP
IP금융, 모바일 지문인식 시대를 연
결정적 조력자
터치스크린으로 OTP를 밀려나게 했던 애플 역시 크루셜텍의 BTP에 관심을 보였다. 직접 크루셜텍을 본사로 초청해 모바일 지문인식 솔루션 개발 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애플은 2012년 미국 모바일 지문인식 센서 업체를 인수해 자체적으로 지문인식 모듈을 생산하고 있지만, 이 업체 역시 크루셜텍과 협력하던 곳이었다. 크루셜텍이 직접 공급하진 않았지만 애플이 아이폰에 지문인식 기능을 도입하면서 2015년 당시 모바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던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사가 이를 채택하기로 하고 크루셜텍에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었다.
“OTP 시장이 쇠퇴하고 BTP 시장이 열렸지만 2012년 OTP 매출이 줄어든 와중에도 개발비에 대거 투자하다 보니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에 대량생산해줄 운전자금(기업이 임금이나 이자의 지불 또는 원재료의 매입 등 경상적 활동에 필요로 하는 자금)이 부족했어요. 이것만 잘 넘기면 찬스가 오는데 말이죠. 전사적으로 자금 조달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크루셜텍은 설립 초기부터 IP 자산을 꽤 많이 확보해 놓은 상태였는데 이를 유동화할 수 있는 제도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갖고 있던 IP 자산의 가치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고요. 한국발명진흥회에서 기술가치평가를 지원받았고, 200억 원 상당의 가치를 평가 받았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약 150억 원의 운전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평가 대상 특허는 BTP에 대한 것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자 상용화했다는 점, 이를 대량생산할 수 있던 시설과 인프라를 갖춘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크루셜텍은 IP금융을 통해 2015년 9월 중국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의 최고가 모델인 MATE 7에 BTP를 탑재하는데 성공했고, 중국의 다른 스마트폰 업체들도 크루셜텍에 BTP를 요청했다. 크루셜텍은 2015년 매출 700억 원대, 2016년 3200억 원을 달성하며 화려한 재도약을 한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BTP
지문인식 신용카드
지문클릭 마우스
DFS
특허,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이는
강력한 힘
BTP는 현재 화웨이, OPPO,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소니, 후지츠 등 17개 글로벌 고객사의 100여 개 스마트폰 모델에 탑재되어있다. BTP는 지금도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 지문 측정 시 혈류, 심박 수 등 기타 생체정보를 동시에 파악해 판별하는 위조지문 방지 솔루션도 개발했으며 초저가 BTP를 개발해 중저가 스마트폰과 피처폰 시장까지 공략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기존 버튼형이 아닌 디스플레이 자체 어디서든 손가락을 대고 지문을 인식하는 디스플레이 일체형 지문인식 솔루션 DFS(Display Fingerprint Solution, 이하 DFS) 개발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들의 안주하지 않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올까. 크루셜텍은 매년 매출액의 10%를 R&D에 투자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력을 갖추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특허 전략이다. 설립 초기부터 지식재산전략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었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IP 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내부적으로 탄탄히 갖췄다. BTP의 경우에도 이미 개발 단계에서 많은 특허를 확보했기 때믄에 상용화 단계임에도 IP금융제도를 통해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었던 것. 실제로 크루셜텍이 보유한 IP는 특허출원 773건, 디자인·실용·신안·상표 출원은 277건에 달한다.
지식재산 전문가인 김재흥 이사가 크루셜텍에 합류한 2011년부터 IP자산 관리를 위한 투자는 더욱 대대적으로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직무발명제도를 도입한 것. 현재는 많은 기업들이 이를 활용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전무했다고.
“발명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동기부여를 하고, 회사 역시 IP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직무발명제도의 취지에 매우 공감했습니다. 도입 이후 특허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도입 이전인 2009년 한 해 특허출원 건수는 84건인 반면 이후인 2013년에는 214건을 출원했습니다. 저희는 보상 체계를 전략, 보상, 활용 등 3단계로 나누어 승급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략 건은 아주 사소한 발명도 출원을 진행하고 소액이라도 보상합니다. 보상 건은 특허성이 인정됐을 때 다시 한 번 보상을 하며 활용 건은 1년이 지난 후 해외특허로서 가치가 있을 때 다시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죠. 전략 건을 통해 특허출원을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크루셜텍은 원천기술이 개발되면 국내외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는데 공격적으로 임한다. 주요 이슈를 살펴보면 지난 해 플렉시블이나 커브드 디스플레이에 적용할 수 있는 DFS 기술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에서 다수의 특허를 취득했고 최근에는 DFS의 정밀성을 향상시키는 센서IC 기술에 대해 국내 특허를 확보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특허의 힘을 가장 실감하는 분야는 영업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들고 고객사를 찾았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특허 리스크입니다. 우리의 특허 포트폴리오가 준비된 답인 거죠. 시장 진입 속도를 아주 짧게 줄여줍니다.”
R&D와 특허를 밀접하게 관리하는 것도 크루셜텍만의 강점이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 IP 기술 동향을 통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물론, 특허 전담 인력을 아예 R&D 부서로 파견한다.
“안 되는 이유는 분명 많습니다. 이를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 지가 중요하죠. 특허가 이러한 방법론에 대해 선택지를 줄여나가는 역할을 해준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사업 보호나 활용을 넘어 제3자에 대한 라이센싱, 매각 등 특허의 가치를 더욱 고도화하는 전략을 펼치고자 합니다.”
이들의 다음 먹거리는 바이오메디컬 분야다. 사람 또는 동물의 생체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센싱하는 기술과 이를 소프트웨어로 분석하는 디바이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허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전략에서 이들의 혁신은 시작되고 있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크루셜텍의 다음을 기대해보자.